
고려시대의 설화는 단순한 전승 이야기를 넘어, 지역의 역사, 신앙, 생활문화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귀중한 문화 자산입니다. 특히 강원도와 경상도는 지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전혀 다른 특성을 지닌 지역으로, 고려 설화에서도 그 차이점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본 글에서는 두 지역의 대표적인 고려 설화를 중심으로 내용과 서사구조, 세계관, 지역적 상징성 등을 비교 분석하며, 설화를 통해 각 지역의 정체성을 어떻게 드러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강원도 : 산신과 자연신앙 중심의 세계관
강원도는 고려시대에도 험준한 산악지대와 깊은 계곡, 바다를 끼고 있는 자연환경으로 인해 자연과 인간의 조화, 산신·용왕 같은 자연신앙이 강하게 설화에 반영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설악산, 오대산, 금강산을 중심으로 한 불교와 무속이 혼합된 설화가 다수 전해집니다.
대표적인 설화는 오대산 문수동자 설화입니다. 이 설화는 문수보살이 어린아이 형상으로 나타나 수행자에게 깨달음을 준다는 이야기로, 단순한 신비 체험을 넘어서 강원도 불교의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오대산 일대에는 스님이 산신령과 만나 깨달음을 얻거나 길을 안내받는 이야기들도 전해집니다.
금강산 선녀 설화는 선녀가 내려와 인간과 사랑을 나누고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강원도에서는 특히 산과 하늘을 연결하는 초월적 공간으로 금강산이 기능하며, 자연이 신격화되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강원도 설화는 대체로 인간이 자연 앞에서 겸허하거나, 또는 자연과 조화되며 살아가는 태도를 강조합니다. 이는 험난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강원도민의 삶이 반영된 것으로, 현세적 성공보다는 정신적 해탈과 깨달음, 자연과 공존하는 삶의 미학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경상도 : 무신과 민중 영웅 중심의 서사
경상도는 고려시대 군사·행정의 요충지로, 특히 경주, 안동, 밀양, 청도 등에서 풍부한 설화가 전해집니다. 이 지역 설화의 핵심은 역사적 실존 인물에 대한 영웅화, 그리고 가문 중심의 충절 이야기가 많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예는 안동 권 씨 가문 설화입니다. 고려 말기 홍건적 침입 당시, 안동 권 씨 문중이 지역을 지키고 백성을 보호했다는 이야기는 지역 기반의 충절과 의로움을 강조합니다. 이 설화는 후손들에 의해 꾸준히 구술되고 문헌화되어 지역 정체성과 유교적 가치관을 결합한 대표적 사례입니다.
밀양 박 씨의 시조 설화는 박혁거세의 후손이 밀양으로 내려와 도술을 부리고 지역을 다스렸다는 내용으로, 신화적 요소와 성씨 정통성이 결합된 설화입니다. 이는 정치적·사회적 목적을 가진 텍스트로 기능합니다.
경주 불국사, 석굴암에 얽힌 설화들은 불교적 초월성과 국가 건립 이념을 반영하고 있으며, 경상도 지역이 고려시대 불교문화와 충절 사상이 혼합된 설화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두 지역 설화의 구조와 상징 비교
| 항목 | 강원도 설화 | 경상도 설화 |
|---|---|---|
| 중심 세계관 | 자연신앙, 불교 | 유교, 불교, 민속 |
| 주요 인물 유형 | 산신, 선녀, 보살 | 장군, 문중 인물, 충신 |
| 주제 | 해탈, 자연과의 조화 | 충절, 가문 명예, 사회적 성공 |
| 서사 방식 | 상징적, 환상적 | 사건 중심, 영웅 중심 |
| 지역 상징 | 오대산, 설악산, 금강산 | 안동, 경주, 밀양 |
| 설화 기능 | 정신적 위안, 영성 추구 | 역사 정당화, 정체성 강화 |
강원도와 경상도의 고려 설화는 단순한 이야기 그 자체를 넘어, 각 지역이 어떻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문화적으로 형상화했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강원도는 자연과 신에 대한 경외와 조화, 정신적 치유와 해탈을 중심으로 설화를 발전시켰고, 경상도는 영웅의 탄생, 가문의 명예, 충절과 정의를 강조하며 설화를 역사화, 제도화해 나갔습니다.
이러한 설화는 오늘날 지역 콘텐츠 개발, 교육 자료, 문화유산 콘텐츠로서의 가치가 높으며, 디지털 시대에는 웹툰, 게임, 영화 등 새로운 형식으로 재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고전 설화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여전히 지역을 대표하고 미래를 연결하는 이야기의 힘을 지닌 살아 있는 문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