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설화는 수백 년 전의 민중적 상상력과 종교적 세계관이 담긴 고전 문학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오늘날 디지털 시대의 대표 콘텐츠인 웹툰과 이러한 고려 설화가 의외로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상상력의 구조, 인물 전개 방식, 서사 형식, 주제 의식까지 , 시대는 다르지만 인간이 원하는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비슷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번 글에서는 고려시대 설화와 현대 웹툰의 구체적인 공통점들을 중심으로, 왜 이 두 매체가 지금까지도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지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초자연적 세계관과 상상력의 유사성
고려 설화의 가장 큰 특징은 초자연적 요소의 일상화입니다. 『삼국유사』나 『제왕운기』에 기록된 여러 설화들에는 귀신, 영혼, 신령, 도술, 신의 계시 등이 자주 등장합니다. 예컨대 「만복사저포기」에서는 죽은 여인이 주인공과 매일 밤 저포놀이를 하는 기이한 이야기가 나오고, 「처용설화」에서는 아내를 빼앗긴 남자가 병의 신을 춤으로 물리칩니다. 이러한 설화들은 단지 상상력의 산물이라기보다는 당시 사람들의 세계 인식과 종교관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특히 불교적 세계관에서 비롯된 윤회, 해탈, 꿈속 계시 등은 신비함과 교훈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습니다.
이러한 서사는 현대 웹툰에서도 매우 유사하게 재현됩니다. 예를 들어 웹툰 신과 함께는 한국의 전통적인 사후 세계관을 바탕으로 저승에서 죄를 심판받는 인간의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이는 「만복사저포기」나 「원효 설화」에서 등장하는 죽음과 깨달음의 개념과 직접 맞닿아 있습니다. 전지적 독자 시점에서는 주인공이 현실과 픽션 세계를 넘나들며 신적 존재들과 조우하고 세계를 구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이는 과거 설화에서 인간이 신령과 만나 도움을 받거나 사명을 부여받는 구조와 일맥상통합니다.
또한 귀멸의 칼날 같은 일본 웹툰도 영혼의 순환, 귀신, 복수, 혈통 등의 요소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이 역시 고전 설화와 유사한 ‘영적 세계관’의 변주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고대 설화와 웹툰은 모두 초현실적 세계를 통해 현실의 감정과 갈등을 해소하려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공유합니다. 이는 인간이 시대를 불문하고 상상력과 신비를 통해 삶의 불안과 고통을 극복해 왔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인물 유형, 이야기 구조의 반복성과 성장 서사
고려 설화와 웹툰의 또 다른 공통점은 인물 유형의 유사성과 서사 전개의 구조입니다. 고려 설화에서는 대체로 비범한 출생, 시련, 도술 획득, 신의 도움, 극복과 보상이라는 서사 구조가 자주 나타납니다. 예컨대 「김현과 호랑이」에서는 평범한 인물이 도술을 익혀 무서운 요괴를 물리치고 존경받는 인물로 성장합니다. 「원효대사 설화」에서도 고통과 의문 속에서 진리를 깨달은 인물이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는 여정이 펼쳐집니다. 이런 구조는 단순히 재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 성장과 삶의 진실 탐구라는 측면에서 의미를 갖습니다.
이와 매우 흡사한 전개는 수많은 웹툰에서 반복됩니다. 나 혼자만 레벨업은 평범하고 약했던 주인공이 죽음의 경계에서 각성하여 강해지고, 끝내 세상을 구하는 존재로 거듭납니다. 신의 탑의 밤 역시 사랑하는 이를 위해 탑을 오르며 수많은 시련과 배신을 겪고 인간적으로, 전투적으로 성장합니다. 화산귀환 역시 전생의 기억을 지닌 채 부활한 무림 고수가 정의를 회복해 나가는 이야기로, 고전 영웅 서사를 충실히 재현하고 있습니다.
고려 설화 속 주인공과 웹툰 속 주인공은 수동적이지만 선한 본성을 지닌 인물에서 출발해, 외부의 힘(도술, 아이템, 신적 존재 등)을 받아 능동적으로 변화하는 구조를 공유합니다. 이처럼 고전 설화와 웹툰은 모두 독자가 감정 이입하기 좋은 성장형 캐릭터 중심의 서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이러한 인물 구조는 시대를 초월해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스토리텔링의 핵심입니다.
시대 반영성과 교훈성: 민중의 현실을 대변하는 이야기
고려 설화는 단순히 종교적이거나 상상력이 풍부한 이야기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안에는 당시 민중들의 삶, 고통, 희망이 녹아 있었습니다. 『삼국유사』에 실린 「처용설화」는 단지 병의 신을 물리친 이야기로 보일 수 있지만, 당시 전염병, 외래문화, 부정(不貞)에 대한 사회적 불안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수로부인 설화」는 여성이 바다 용왕에게 납치되는 이야기이지만, 바다에 대한 공포, 신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 여성을 통한 지역 화합의 상징 등이 담겨 있죠.
이처럼 설화는 사회적 현실에 대한 우회적 표현이자, 당시 권력과 종교, 민중 간의 긴장을 상징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고려 설화는 하층민의 꿈, 불만, 염원, 억압에서의 탈출을 간접적으로 해소하는 심리적 장치로도 기능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현대 웹툰 역시 현실 사회의 모순을 은유하거나 직접적으로 고발합니다. 미생은 청년들이 겪는 고용 불안, 사내 정치, 인간관계를 리얼하게 묘사하며, 나는 귀머거리 다는 장애와 차별 문제를 웹툰이라는 대중적 플랫폼에서 조명합니다. 치즈 인 더 트랩은 불안정한 인간관계, 내면의 불안, 청춘의 상처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특히 대학생·청년층의 정서와 깊이 공감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고려 설화와 웹툰 모두 사회적 모순을 해소하고자 하는 집단적 감정 해소 장치이며, 교훈과 현실 비판을 함께 담은 민중적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문학이 단지 재미나 미학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시대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정서를 위무하는 기능도 수행함을 보여줍니다.
서사 형식과 콘텐츠 구조: 연속성, 몰입도, 시각화
흥미로운 점은, 고려 설화와 웹툰은 형식적으로도 비슷한 서사 전략을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고려 설화는 반복적이고 간결하며 말로 전하기 쉽고, 기억하기 쉬운 구문과 리듬이 특징입니다. 예컨대 “어느 날 꿈에…”로 시작해 신이 나타나거나, “산에 호랑이가 나와…”처럼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급격히 전환되는 구조가 많습니다. 이는 긴 이야기를 짧은 시간 안에 강하게 전달해야 했던 구비문학의 특성이기도 하죠.
웹툰 역시 이러한 구조를 계승합니다. 회차 단위의 이야기, 엔딩 컷에서의 반전, 비일상의 일상화는 고전 설화와 유사한 몰입 전략입니다. 특히 웹툰의 연재 시스템은 고려 설화의 구전적 특징(연속성, 반복성)과 매우 닮아 있으며, 그림과 말의 조합이라는 점에서는 벽화 설화나 민화 설화의 시각적 문학성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더불어 웹툰은 SNS, 댓글 문화, 팬덤과 결합되면서 독자와 창작자가 공동으로 설화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고려시대 구비 전승자와 청중 사이의 상호작용과 유사한 ‘공동체적 서사 창출 방식’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설화는 죽지 않는다 - 이야기는 방식만 바뀔 뿐
고려시대 설화와 현대 웹툰은 시대, 매체,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사람이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형식이라는 점에서 공통됩니다. 신비한 세계를 향한 상상력, 성장과 회복을 그리는 인간 서사, 사회에 대한 비판과 통찰, 그리고 감정의 울림은 수백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웹툰은 디지털 기술을 입은 새로운 설화이며, 고려 설화는 그 원형이자 정신입니다. 지금도 많은 웹툰 작가들이 전통 설화를 리메이크하거나 변형해 새로운 서사로 재탄생시키고 있습니다. 신과 함께, 삼국지톡, 화산귀환 등은 고전 세계관과 현대 서사를 연결하며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이야기의 힘을 실감케 합니다.
우리가 고려 설화를 읽고, 웹툰을 보는 이유는 같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세상은 왜 이럴까?”, “나는 어떤 존재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 싶어서 말이죠. 그 해답은 시대마다 다르지만, 이야기 속에서 공감하고, 위로받고, 생각하는 방식은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