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초기, 유학자라면 절대 다루어서는 안 될 귀신 이야기를 과감히 소설로 엮어낸 책이 있습니다. 바로 김시습이 금오산에서 지은 『금오신화』입니다. '신(新)'은 귀신 신이 아닌 '새로운'을 뜻하는 새 신 자로, 금오산에서 새롭게 지은 이야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향로의 향을 피우고 먹을 갈아 기이한 새로운 이야기를 두루 적는다는 김시습의 말처럼, 이 책은 당대 유교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한 혁신적 작품이었습니다.
초현실 서사로 담아낸 현실 비판
『금오신화』는 총 5편의 초현실적 서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용궁부연록, 남염부주지가 그것입니다. 만복사저포기는 일찍 부모를 잃은 양생이 만복사에서 부처님과 저포놀이를 하여 이기고, 그 대가로 아름다운 처녀를 만나 3일간 사랑을 나누지만 그녀가 외부에게 죽임을 당한 귀신이었음을 알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생규장전은 담 너머로 최랑을 본 이생이 사랑에 빠지고 결혼까지 하지만, 홍건적의 난으로 최랑이 죽고 귀신이 되어 다시 만나 함께 살다가 영원히 헤어지는 비극을 담고 있습니다. 취유부벽정기에서는 홍생이 술에 취해 부벽정에서 만난 기자조선 기자의 딸과 망국의 슬픔을 나누며 시를 짓지만, 날이 밝자 그녀가 하늘로 올라가고 홍생은 그리움에 죽습니다.
이러한 초현실적 설정은 단순한 판타지가 아닙니다. 김시습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과 이상을 초월적 공간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그러나 그 만남은 언제나 일시적이고, 결말은 비극으로 귀결됩니다. 이는 현실의 부조리와 제도적 모순을 극복하려는 인간 의지가 결국 좌절될 수밖에 없다는 냉엄한 인식을 반영합니다. 현실을 초월한 사랑조차 지속될 수 없다는 설정은, 당대 사회 질서와 유교적 가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자 지식인의 무력함을 드러내는 장치입니다. 이상과 감정이 현실과 화해하지 못하고 소멸되는 구조는 독자에게 깊은 공감을 주면서도 답답함을 남깁니다. 김시습은 왜 희망 대신 단절을 선택했을까요? 초월은 도피였는지, 아니면 저항이었는지 끝내 의문이 남습니다.
귀신 전기소설로 시대의 틀을 깨다
『금오신화』의 '신(新)' 자는 귀신 신이 아니라 새 신 자입니다. 이는 김시습이 의도적으로 유교 질서에서 금기시되던 귀신 이야기를 '새로운 형식'의 문학으로 승화시켰음을 의미합니다. 당시 유학자들은 귀신의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되었고, 그러한 책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금오신화』는 가히 혁신적인 책이었고, 동시에 금서였습니다. 조선시대 내내 이 책은 구하기 어려웠으며, 7년간의 임진왜란 때는 불타버리거나 일본으로 약탈되어 갔습니다. 1927년 최남선이 일본에서 구해 우리나라에 소개했지만,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책은 발견되지 않았다가 1990년에야 조선시대 발간본이 발견되었습니다.
용궁부연록에서는 글을 잘 쓰지만 출세하지 못한 한생이 꿈속에서 용궁에 초대받아 새 건물의 상량문을 멋들어지게 작성하고, 용왕이 크게 기뻐하며 용궁 구경과 선물을 안겨줍니다. 한생이 꿈에서 깨었을 때 선물이 그대로 옆에 있었고, 이후 공부를 내려놓고 산에 들어가 살았다는 내용입니다. 남염부주지는 귀신을 믿지 않던 유학자 박쟁이 꿈에서 염라대왕을 만나 지옥을 직접 목격하고, 귀신과 윤회 사상, 천국에 대해 문답을 주고받습니다. 박샘의 박식함에 흡족해한 염라대왕은 왕위를 물려주겠다 하고, 막생은 꿈에서 깬 뒤 몇 달 후 죽습니다. 박쟁이 죽은 날 이웃집 사람이 꿈에서 염라대왕이 나타나 '내 왕위를 박쟁에게 물려주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이러한 전기소설 형식은 믿기 힘든 초현실적 이야기지만, 지금 들어도 재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은 해피엔딩이 아닙니다. 김시습의 한평생 불우했던 삶을 반영하는 듯합니다. 특히 용궁부연록이나 남염부주지는 능력이 출중했지만 출세하지 못했던 자신의 삶과 굉장히 닮아 있습니다. 김시습은 다섯 편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 여러 가지 제도나 인습,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전쟁과 같은 사건들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를 말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자신은 한평생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여전히 꿈꾸고 있는 희망을 놓지 않은 자신의 마음을 간절하게 이 이야기에 담은 것이 아닐까요?
김시습 저항정신, 타협 없는 지식인의 길
김시습은 뛰어난 천재로 태어났으나 세상에 불의를 만나 세상과 화합하지 못했던 지식인으로 한평생 조선의 아웃사이더로 살았습니다. 그는 부조리한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지도 않았고, 세상을 외면하지도 않았습니다. 은둔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자신의 꿈 때문이었습니다. 500년 전 김시습이 그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요? "세상이 불합리하다고 꿈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꿈꾸다 죽은 늙은이가 되십시오"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김시습의 저항정신은 현실 변혁이 아닌 내면의 지조를 지키는 방식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는 세조의 왕위 찬탈이라는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벼슬을 거부하고 방랑의 삶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방랑은 도피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저항이었습니다. 『금오신화』는 바로 그 저항의 산물입니다. 유교 질서가 금기시하던 귀신 이야기를 통해 현실 비판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초현실적 공간에서나마 이상을 실현하려 했습니다. 비록 그 결말이 비극이고 허무하더라도, 김시습은 꿈꾸는 행위 자체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저항정신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김시습의 선택에는 한계도 있습니다. 현실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지식인의 무력함이 그것입니다. 초월과 은둔은 저항이면서 동시에 현실로부터의 후퇴이기도 합니다. 이상과 감정이 현실과 화해하지 못하고 소멸되는 구조는 당대 지식인이 처한 딜레마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김시습은 왜 희망 대신 단절을 선택했을까요? 그것은 현실 변혁에 대한 절망이었을까요, 아니면 내면의 순수함을 지키기 위한 의도적 선택이었을까요? 이 질문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금오신화』는 단순한 귀신 이야기가 아닙니다. 시대의 부조리에 맞서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킨 한 지식인의 치열한 사유와 저항의 기록입니다. 비록 그 결말이 허무하고 비극적이더라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꿈꾸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세상이 불합리하다고 꿈을 접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꿈꾸다 죽은 늙은이가 되라는 김시습의 메시지는 5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뇌하는 모든 이들에게 『금오신화』는 타협 없는 지식인의 길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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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PUc2I06Rd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