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천재 문인이자 『금오신화』의 저자 매월당 김시습. 그는 5세에 이미 신동으로 불리며 세종대왕으로부터 "장차 나라를 위해 크게 쓰겠다"는 칭찬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계유정난이라는 역사적 비극 앞에서 그는 자신의 모든 책을 불태우고 출가하여 평생을 방랑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천재로 태어나 아웃사이더로 살다 간 김시습의 삶은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천재 신동 김시습의 탄생과 성장
김시습은 태어날 때부터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습니다. 성균관 근처 반공이라는 집에서 공자가 나오는 꿈을 성균관 사람들이 꾸었고, 그다음 날 그 집에서 아이가 태어났다는 일화는 그의 비범함을 예고했습니다. 태어난 지 불과 8개월 만에 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외할아버지는 한글도 떼기 전에 천자문부터 가르쳤다고 합니다.
김시습의 가문 배경은 독특했습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무관 출신이었고, 특히 아버지는 음서로 낙하산처럼 관직에 진출한 인물이었습니다. 반면 외할아버지는 학식이 풍부한 문인이었기에 김시습은 외가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그의 이름 '시습'은 집현전 출신이자 높은 벼슬까지 올랐던 최치운이 지어주었는데, 논어의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역시 기쁘지 않은가"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입니다. 가르치면 가르치는 족족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아이였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던 것입니다.
3살 때 이미 시를 짓기 시작한 김시습은 어느 날 유모가 맷돌로 콩을 가는 모습을 보고 "비도 안 오는데 천둥소리 어디서 나는가, 누런 구름이 풀풀 사방으로 흩어지네"라는 시를 지었습니다. 이러한 명성은 입소문을 타고 퍼져나갔고, 그는 최고의 스승들로부터 교육받을 수 있었습니다. 성균관 출신이자 예문관 수찬이었던 이계전으로부터 중용과 대학을, 성균관 대사성 출신 김반에게 맹자·시경·서경을, 성균관 겸사성 윤상에게 주역과 예기를 배웠습니다. 10대에 이미 모든 경전 공부를 마친 것입니다.
5살 때는 좌의정이었던 허조가 직접 찾아와 "늙을 노자를 써서 나를 위해 시를 지어달라"라고 부탁했고, 김시습은 "늙은 나무에 꽃이 피었으니 마음은 늙지 않았네"라고 답하여 허조를 감탄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소문은 세종대왕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세종은 승지를 시켜 김시습을 테스트했습니다. 승지가 "동자의 학문은 백학이 푸른 소나무 끝에서 춤을 추는 것 같구나"라고 하자, 김시습은 "어진 임금님의 덕은 황룡이 푸른 바다 가운데서 노니는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세종은 크게 칭찬하며 비단 50 필을 하사하고 "제주를 밖으로 드러내지 말고 잘 길러서 학문이 성취되기를 기다렸다가 장차 나라를 위해 크게 쓰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김시습은 5세 신동으로 불리며 조선을 위한 충의의 꿈을 키워나갔습니다. 설악산의 오세암이라는 이름도 5세 김시습이 머물렀다 해서 붙여진 것입니다.
아웃사이더 삶을 선택한 이유와 방랑의 시간
하지만 김시습의 삶은 그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15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어머니의 3년상 중에 외할머니마저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병약하다는 이유로 상을 치르지 않았고 아들에게도 관심이 없었기에 김시습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컸습니다. 이 시기에 결혼했으나 얼마 되지 않아 부인을 상처했고, 과거 시험에 응시했으나 천재였던 그가 낙방하는 충격을 겪었습니다.
삼각산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공부하던 중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세조가 계유정난을 일으켜 단종을 상왕으로 만들고 왕위에 올랐다는 것이었습니다. 김시습은 3일 동안 통곡하며 자신이 공부하던 책을 모두 불태웠고, 출가하여 선잠이라는 법명으로 스님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이후 철원 지역에서 세조를 피해 모인 사람들과 교류하던 중 사육신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사육신이 거열형으로 처형되어 시신이 방치되자, 김시습은 밤늦게 그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노량진 근처에 무덤을 만들어주었습니다.
김시습은 자신이 왜 출가했는지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성격이 질탕하여 명리를 즐겨하지 않고 생업을 돌보지 아니하여 다만 청빈하게 뜻을 지키는 것이 포부였다. 본디 산수를 찾아 방랑하고자 하여 좋은 경치를 만나면 이를 시로 읊조리며 즐기기를 친구들에게 자랑하곤 하였지만 문장으로 관직에 오르기를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하루는 홀연히 감개 안 일(세조가 왕위를 찬탈한 일)을 당하여 남아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도를 행할 수 있는데도 몸을 깨끗이 보전하여 삼강오륜을 어지럽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도를 행할 수 없는 경우에는 홀로 그 몸이라도 지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전국을 떠돌며 24살에 탕유 관서록을, 26살에 탕유 관동록을, 29살에 탕유 호남록을 저술했습니다. 세조를 피해 불의한 세상을 등지기 위해 방랑했지만, "머리를 깎은 것은 세상을 피하려 하고자 하는 뜻이었고 수염을 기른 것은 장부의 뜻을 나타내려 함이었다"라는 그의 말처럼 유학자로서의 자신의 꿈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29살에 서울을 들렀을 때 효령대군의 요청으로 불경언해 사업을 도왔고, 원각사 낙성회의 찬실을 지어주었습니다. 세조가 이를 보고 흡족해하며 낙성식에 초대했으나, 김시습은 절의 뒷간 똥통에 빠져 참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세조가 여러 천거를 받고 김시습을 등용하려 했으나 역시 똥통에 빠지는 방법으로 거부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유학자 정신을 지킨 매월당의 말년
김시습은 경주 남산, 당시 금오산이라 불리던 곳에 작은 산방을 짓고 머물렀습니다. 이곳에서 자신의 호를 매월당이라 새롭게 지었는데, 매화 매자와 달 월자를 사용한 것은 유학자로서의 절개와 의지를 상징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금오산실에서 7년간 머물며 『금오신화』를 저술했습니다.
마흔이 다 되었을 즈음 다시 서울로 돌아온 김시습은 수락산에 폭천정사라는 집을 짓고 오랫동안 살았습니다. 그가 서울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친분이 있던 양양 부사 유자 안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왕이 등극하여 어진 인재를 등용하고 좋은 의견들을 들어준다고 하기에 속으로 벼슬이라도 해볼까 한 적이 있었다"라고 말한 것처럼, 성종이 즉위하면서 유학자로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40대 후반에 갑자기 환속한 김시습은 머리를 기르고 고기를 먹으며 두 번째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제사를 모셨는데, 이는 유학자로서 대를 잇지도 못하고 조상의 제사를 섬기지도 못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부인도 일찍 죽게 되고, 폐비 윤 씨 사사 사건이 일어나면서 다시 서울을 떠났습니다. 세상이 바뀌었고 사람들은 그를 잊어버렸으며, 계유정난을 일으켰던 사람들이 여전히 높은 벼슬에 있는 모습을 보고 벼슬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것입니다.
강원도를 떠돌다가 몸이 쇠약해진 김시습은 마지막으로 부여의 무량사를 찾았고, 그곳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비석에 "꿈꾸다 죽은 늙은이"라고 써달라고 했습니다. "나의 인생"이라는 시에서 "100년 뒤 나의 무덤에 비석을 세울 때 꿈속에 살다 죽은 늙은이라 써준다면 나의 마음을 잘 이해했다 할 것이니, 천년 뒤에 이내 회포 알아나 주었으면"라고 노래했습니다. 한평생 꿈꾸었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꿈만 꾸다 죽은 늙은이로 적어달라는 그의 당부는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또한 그는 승려로 죽었지만 화장시키지 말고 근처에 묻어달라고 했는데, 이 역시 유학자로서의 삶도 자신의 일부였음을 보여줍니다. 3년 후 무덤을 파보니 그의 모습이 살아있을 때 그대로였고, 다비식으로 화장하니 사리가 나와 부도를 만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김시습의 삶은 경주의 한 사찰 사당에서 썰렁한 제단으로 남아있지만, 그가 남긴 정신은 여전히 우리에게 깊은 가르침을 줍니다.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 옆에는 항상 가르침을 주는 위대한 스승들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아는 것을 후세에게 전하는 모범적인 삶의 중요성을 김시습의 삶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천재로 태어나 아웃사이더로 살다 갔지만, 그의 이름은 조선왕조실록에 남아 후세인들에게 칭송받으며 역사에 적지 않은 존재감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매월당 김시습의 금오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들에 대해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PUc2I06Rd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