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현재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세계적인 대도시지만, 조선시대에는 ‘한양’이라는 이름으로 500년 왕조의 정치·문화·행정 중심지였습니다. 왕궁과 관아, 시장, 서민들의 삶이 어우러졌던 이 도시 곳곳에는 수많은 이야기와 전설, 그리고 구전 설화가 세대를 거쳐 내려오고 있습니다.
특히 한양 도성 내부와 그 주변에서 발생한 민간 설화들은 단순한 전설을 넘어서 당시 조선인들의 신앙, 윤리, 공동체 인식이 집약된 문화 자산입니다.
이 글에서는 한양 도성을 중심으로 전해지는 대표 설화들을 소개하고, 그 설화들이 오늘날 도시의 정체성과 문화관광 자원으로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사직단과 도성을 수호한 사신(司神)의 전설
한양 도성의 서쪽, 경복궁과 가까운 위치에 있는 사직단은 조선의 왕이 직접 국가의 안녕과 풍요,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며 제사를 올렸던 국가 제례 공간입니다. 유교 국가로서 제례의식을 중시한 조선은 이 사직단을 ‘백성의 삶을 지키는 신성한 공간’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민간에서는 이 공간을 단순한 의례의 장소가 아니라, 실제로 도성 전체를 수호하는 신령한 존재가 머무는 곳으로 믿었습니다.
설화에 따르면 태종이 한양을 새 수도로 정하고 사직단을 세운 이후, 밤마다 이 일대에서 이상한 바람소리, 종소리, 울음소리 같은 현상이 들렸다고 합니다. 처음엔 두려움에 떨던 백성들은 곧 "이것은 도성을 지키는 사신(司神)이 순찰을 돌며 악귀를 쫓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실제로 이후 몇 년간 큰 화재나 전염병이 발생하지 않아 더욱 신성시하게 되었습니다.
조선 중기에는 사직단 축제에 맞춰 목각 인형을 만들어 행렬을 재현하거나, 밤에 사신이 도성을 도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린 ‘순찰도’가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신화적 존재는 민간에서 국가와 도시를 지키는 신령으로 정착되었고, 조선 후기까지 사직단 인근 주민들은 제를 올리며 사신의 가호를 기원했습니다.
현대에 들어 사직단은 서울시가 보존하고 있는 역사공원으로 재정비되었으며, 매년 시민을 위한 역사 해설 프로그램과 함께 ‘도성을 지키는 전설’이라는 주제로 어린이 역사 교육 콘텐츠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도성의 일부였던 사직단의 설화는 서울의 문화 정체성과 교육적 가치로 이어지고 있는 대표 사례입니다.
숭례문과 여신의 희생 설화
숭례문은 한양 도성의 남문이자 조선의 국도 정문으로, 국보 제1호로 지정되어 있는 상징적인 문화재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단지 ‘성문’으로 보지만, 숭례문에는 한 여인의 희생과 도시의 평화를 위한 민간 설화가 전해집니다.
설화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숭례문을 축조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처음 공사를 시작했을 때, 벽돌이 자주 무너지고 문이 완성되어도 갑작스러운 붕괴가 반복되었다고 합니다. 무학대사는 풍수를 분석한 끝에 "이 땅에는 불(火)의 기운이 지나치게 강하여, 귀신들이 성문을 통해 도성으로 들어오려 한다"라고 해석합니다.
이때 한 평범한 여인이 나서서 “내가 제물이 되면 귀신들이 물러갈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희생합니다. 그녀는 문지방 밑에 묻히며 기도했고, 그 후로 공사는 무사히 마무리되었으며 성문은 몇 세기를 거쳐 도성을 수호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이후 백성들 사이에서 ‘남대문 여신’ 설화로 구전되었고, 여성의 희생과 도시 수호라는 주제가 결합되어 하나의 도시신앙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남대문 근처에서는 봄마다 여인을 기리는 소규모 제례가 열렸다는 기록이 있고, 시장 상인들은 "여신의 기운을 받아야 장사가 잘된다"며 숭례문에 절을 하고 장사를 시작하곤 했습니다.
오늘날 이 설화는 서울 남대문시장과 연계하여 ‘남대문 설화 투어’, ‘여신길 스토리 전시’ 등 문화콘텐츠로 재해석되고 있으며, 관광객들에게 숭례문이 단순한 역사물이 아니라 신화적 서사가 깃든 유산임을 알려주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인왕산 호랑이와 왕의 마음을 시험한 자연
인왕산은 조선시대부터 ‘왕기를 품은 산’이라 불릴 만큼 경복궁과 가까우면서도 웅장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상징적인 산입니다. 그런데 이 산에는 세종대왕과 호랑이의 전설이라는 유명한 설화가 전해집니다.
설화에 따르면, 어느 해 인왕산에 호랑이가 자주 나타나 백성들을 해쳤고, 마을에서는 불안에 떨었습니다. 세종은 장수를 보내 호랑이를 잡으라 명했으나, 호랑이는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했고,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때 궁중을 드나들던 한 노승이 왕에게 말합니다. "이 호랑이는 단순한 짐승이 아니라 산의 정령이며, 백성의 고통을 들으러 나온 존재입니다. 왕께서 친히 산에 올라 민심을 살피고 고요한 마음으로 기도한다면, 호랑이는 더는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세종은 이를 받아들여, 겸허한 마음으로 인왕산을 걸으며 기도했고, 그 뒤로 호랑이는 자취를 감추었다고 합니다. 이 설화는 왕도정치, 즉 민심을 얻는 것이 곧 나라를 다스리는 가장 큰 힘이라는 조선의 통치 철학을 반영한 이야기로 해석됩니다.
이후 인왕산은 왕실의 순행 코스로 편입되었고, 조선 후기에는 선비들과 백성들이 ‘세종의 길’을 따라 산책하며 왕의 마음을 기리는 풍습이 생겼습니다.
서울시는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현재 ‘인왕산 스토리 탐방길’, ‘세종의 기도길’이라는 도보 코스를 운영하며, 시민들이 과거의 이야기와 산의 정기를 함께 체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인왕산 호랑이 설화는 도시와 자연, 정치와 신앙이 결합된 복합적 전승문화 자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울은 단지 현대적인 건축물과 빠른 생활의 상징이 아닙니다. 그 도심 곳곳에는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설화와 전승이 숨 쉬고 있으며, 이는 도시의 정체성을 더욱 깊고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보이지 않는 지도입니다. 사직단의 사신, 숭례문의 여신, 인왕산의 호랑이—이 모두는 조선의 수도 한양에서 살아 숨 쉬던 민중과 왕, 신앙과 정치가 얽힌 이야기입니다.
이제 서울은 과거의 설화를 단순한 전통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서울시는 이러한 이야기를 도시문화 콘텐츠로 적극 발굴하고 있으며, 시민과 관광객이 직접 참여하는 스토리 기반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설화는 다시 살아나고, 사람들의 삶과 연결되고 있습니다.
서울을 걷는다면 눈에 보이는 유적뿐 아니라, 그 이면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시길 바랍니다. 설화는 도시가 품은 기억이며, 앞으로 서울이 만들어갈 문화 미래의 자산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