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부산 영도에서 태어나 바다와 함께 자란 사람입니다. 어릴 적 이송도 앞바다에서 해녀들이 물질하는 모습을 수없이 봤고, 그 휘파람 같은 순빗소리를 따라 하며 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해녀들의 망태기 안을 들여다보던 그 호기심 가득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고향의 해녀들이 모두 사라졌지만, 제주에서는 여전히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반갑습니다. 제주 해녀는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해녀 어업 시스템은 2023년 UN 식량농업기구(FAO)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도 인정받았습니다(출처: 문화재청). 거친 파도 속에서 생계를 이어온 이 여성 공동체는 단순한 노동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물질 기술과 신체 적응력
제주 해녀들은 하루 평균 200회 이상 잠수를 반복합니다. 한 번 잠수할 때마다 30초에서 2분 정도 숨을 참으며, 하루 4시간에서 8시간 동안 물질을 이어갑니다. 겨울철에는 체온 유지가 어려워 4시간 정도가 고작이지만, 날씨가 좋고 파도가 잔잔할 때는 8시간까지 바다에 머물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365일 물질을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매달 보름 정도 썰물이 들 때만 작업이 가능해 한 달 중 실제 물질 가능 일수는 10일에서 15일 정도입니다.
과학자들이 제주 해녀들의 신체를 연구한 결과, 육지 여성들과 확연히 다른 생리적 특징이 발견되었습니다. 물속에 들어갔을 때 심박수가 일반인보다 3배나 감소하며, 산소를 비축하는 비장(脾臟)의 크기가 36%나 더 컸습니다. 여기서 비장이란 혈액을 저장하고 산소 공급을 조절하는 장기로, 오랜 잠수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발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혈압 안정 능력도 뛰어나 물속에서도 일정한 혈압을 유지하는 유전자 발현율이 일반 여성보다 무려 5배 높다고 합니다(출처: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저는 어릴 적 해녀들이 물 밖으로 나와 '호이 호이' 하고 내뱉는 순비소리를 듣고 자랐습니다. 그 소리는 이산화탄소를 한꺼번에 내뿜고 산소를 들이마시는 생존 본능의 표현이었습니다. 순빗소리는 휘파람처럼 맑고 날카로운데, 물속에서 숨을 오래 참았다 나올수록 더 선명한 소리가 난다고 합니다. 해녀들은 이 순빗소리 한 번에 자식을 키우고, 순빗소리 두 번에 부모를 모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들의 삶은 생계와 직결된 고된 노동이었습니다.
물질할 때 필요한 도구는 최소한입니다. 수경을 쓰고 허리에는 무거운 납을 차서 물속으로 가라앉고, 전복을 채취할 때는 비창을, 소라나 문어를 잡을 때는 까꾸리를 사용합니다. 미역이나 톳을 채취할 때는 종개 호미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맨몸으로 최소한의 도구만 가지고 바다로 들어가는 해녀들의 물질은 그 어떤 어업 방식보다 자연친화적입니다. 1970년대 이후 일본에서 잠수복이 들어왔지만, 처음에는 값이 비싸고 입고 벗기 불편해 반발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체온 유지가 쉬워 겨울에도 오래 물질할 수 있어 자연스럽게 수입이 늘어나면서 보급되었습니다.
해녀들이 물 위에 띄워 두는 태왁(테왁)은 위치를 알려주는 표시이자 잠시 쉴 수 있는 도구입니다. 테왁이란 '물 위에 떠 있는 바가지'라는 뜻으로, 초창기에는 지붕 위에 열리는 박을 속을 파내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스티로폼으로 만든 테왁을 사용하며, 해녀들은 자신의 테왁을 구분하기 위해 이름을 쓰거나 장식을 달아둡니다. 테왁은 해녀들에게 분신과도 같아서, 실종된 해녀의 위치를 알려주는 단서가 되기도 합니다.
해녀들의 물질은 생명을 담보로 한 작업입니다.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 '칠성판을 등에 지고 혼백상자를 머리에 이고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위험합니다. 여기서 칠성판이란 관 바닥에 까는 판을 의미하고, 혼백상자는 죽은 이의 혼을 담는 상자입니다. 즉 물질은 언제든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대왕전복의 유혹에 빠져 욕심을 부리다 물숨을 먹고 목숨을 잃는 해녀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해녀들 사이에는 '물속에 내려갈 때 본 전복은 따도, 물 밖으로 올라올 때 본 전복은 잊어버려야 한다'는 철칙이 있습니다.
공동체 문화와 전승 과제
제주 해녀 공동체에는 '불턱'이라는 독특한 쉼터가 있습니다. 불턱은 돌로 둘러쳐진 공간으로,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아이를 돌보며 화덕에서 불을 피워 몸을 녹이는 곳입니다. 파도 상태나 물속 정보를 나누는 일종의 커뮤니티 공간이죠. 요즘으로 치면 해녀들의 카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불턱에서는 많은 이야기가 오가다 보니 오해나 불화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해녀들에게는 '불턱에서 나눈 이야기는 절대 밖으로 옮기지 않는다'는 철칙이 있습니다. 이는 공동체 내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는 지혜로운 규칙입니다.
해녀들은 참을 수 있는 숨의 길이에 따라 상군·중군·하 군으로 나뉩니다. 상군은 2분가량 숨을 참으며 10m~20m 깊이에서 물질하는 최고 숙련자이고, 중군은 7~8m, 하군은 3~5m 정도 깊이에서 작업합니다. 초보 해녀는 '똥군'이라 불리며 2m 정도 얕은 바다에서 시작합니다. 각 계급마다 물질하는 영역이 정해져 있어 서로 침범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철저한 질서 속에도 따뜻한 정이 있습니다. 상군 해녀들은 아기 해녀를 위해 전복이나 소라를 슬쩍 넣어주는 '개석'을 하기도 하고, 고령의 해녀들을 위해 얕은 바다에 '할머니 바닥'을 마련해 줍니다.
해녀들은 공동으로 물질하기도 합니다. 특히 미역이나 톳을 채취할 때는 대부분 공동 작업으로 이뤄지며, 그 수익금은 공동으로 사용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학교 밧'입니다. 여기서 '밧'이란 제주 방언으로 '밭', 즉 공동 작업 구역을 뜻합니다. 학교 밧을 통해 걷은 수익금은 자녀들의 육영회비를 대거나 마을 공동체를 위해 기부됩니다. 1950년대에서 70년대까지 해녀들은 학교 밧 수익금으로 학비를 못 내는 학생들을 지원했고, 1950년 화재로 온평초등학교 교실이 모두 소실되었을 때는 성산읍 온평리 해녀들이 교실 재건축 자금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학교는 해녀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해녀 공덕비'를 세웠습니다(출처: 제주특별자치도).
저는 어릴 적 해녀들이 망태기를 들고 올라오는 모습을 보며 그 안에 무엇이 들었을까 궁금해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망태기 안에는 단순한 해산물이 아니라 가족의 생계와 마을의 미래가 담겨 있었던 셈입니다. 해녀 공동체는 철저한 질서와 규칙을 갖추면서도 그 속에 훈훈한 정과 나눔의 미덕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는 바다를 골고루 나누어야 한다는 마인드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하지만 현재 해녀들의 숫자는 급격히 줄고 있습니다. 남아 있는 해녀들의 대부분이 60세 이상이며, 70세 이상 고령자가 상당수를 차지합니다. 해녀 학교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꽤 있지만, 해녀 학교를 졸업하고 실제 해녀가 되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해녀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까다롭고, 오랜 전통이 폐쇄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해녀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일인데도 보험 가입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젊은 사람들에게 큰 장벽이 됩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해녀 문화의 전승은 요원할 것입니다.
제주 해녀들은 "바다가 밥이고 집이고, 다시 태어나도 또 해녀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바다는 그들에게 생계의 터전이자 마음의 안식처였습니다. 마음이 괴로울 때도 바다에 가면 슬픔을 잊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물의 힘이라고 하죠. 저 역시 어린 시절 바다가 가까운 친구였기에 그 말이 이해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해녀의 삶을 '강인한 여성' 서사로만 소비하는 태도는 경계해야 합니다. 고된 노동과 잠수병, 수산 자원 고갈의 위험은 종종 낭만적인 이미지에 가려집니다. 관광 콘텐츠로 재현되는 모습이 실제 노동 환경과 얼마나 일치하는지도 의문입니다.
해녀는 자율적 경제 주체였을까요, 아니면 열악한 조건 속에서 선택의 여지가 제한된 노동자였을까요. 공동체 규율은 보호 장치였는지, 또 다른 제약이었는지도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용기를 기리지만, 오늘의 정책과 시장이 그 삶을 충분히 존중하고 있는지 묻게 됩니다. 바다와 함께한 시간은 자부심이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이어갈지에 대한 답은 아직 열려 있습니다.
거친 바다에서 삶을 일구며 서로의 숨을 지켜주고, 겸손을 잃지 않고 욕심을 경계하며 살아온 제주 해녀들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지혜입니다. 생존과 연대, 나눔과 배려의 가치를 몸소 실천해 온 그들의 삶을 단순히 과거의 유산으로 남겨둘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으로 이어가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보험 제도 개선, 해녀 학교 지원, 젊은 세대 유입을 위한 환경 조성 등 실질적인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제주 해녀의 순빗소리가 앞으로도 제주 바다에 울려 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7Z0ekFnPa9U&list=PLny0hGEMqxdde8RpM-WnFUxvNPEEDyvsB&index=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