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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천재 아웃사이더 허균(천재문장가,시문외교,한글의 해외 전파)

by gohappyjan 2026. 1. 24.

허균
허균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을 떠올릴 때, 우리는 얼마나 그의 진면목을 알고 있을까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문장가이자 외교가로서 허균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고 특별했습니다. 교산 허균의 혼에 담긴 천재성과 그가 임진왜란이라는 국난 속에서 보여준 탁월한 능력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소설가로만 기억되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5세 양천 허 씨 집안의 천재 문장가


허균은 단순히 개인의 재능만으로 이루어진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명문가이자 천재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강릉 초당두부의 유래가 된 허엽을 아버지로 두고, 허난설헌으로 더 잘 알려진 허초희를 누이로 둔 집안이었죠. 허엽은 서경덕의 문하에서 공부했던 동인의 거두였으며, 그의 자녀들인 허성, 허봉, 허초희, 허균은 모두 문장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이들은 5세 양천 허씨의 5 문장가로 불렸습니다. 강릉 허난설헌 기념관에 가면 이 다섯 명의 문장가를 만날 수 있는데, 이는 한 집안에서 이처럼 뛰어난 문인들이 동시대에 배출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허균은 막내아들로 태어나 형제들의 문학적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허균이라는 이름 앞에는 풍운아, 이단아, 혹은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홍길동전의 작가라는 단면만을 기억할 뿐, 그의 진정한 천재성이 어디에서 발휘되었는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허균의 삶을 살펴보면 그는 시에 특히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이 능력은 개인적 성취를 넘어 국가적 차원에서 활용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단순히 시를 잘 짓는 것이 문학적 재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외교와 정치의 도구가 되었다는 점에서 허균의 천재성은 더욱 빛을 발합니다.


임진왜란과 시문외교의 핵심 역할


임진왜란이라는 국난 속에서 허균의 능력은 진가를 발휘했습니다. 명나라의 원군과 함께 들어온 명나라 사신들의 마음을 얻는 것은 조선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명나라 사신들은 조선의 문인들과 시를 나누는 것을 굉장히 즐겨했는데, 바로 여기서 문장을 잘 짓고 시를 많이 외우고 있으며 시를 잘 짓는 허균의 능력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입니다.
허균은 사신을 접대하는 일을 맡아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광해군 일기에는 "허균은 글 쓰는 재주가 매우 뛰어나 수천 마디의 말을 분만 들면 써 내려갔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의 자동으로 문장이 나오고 시가 나오는 수준이었다는 것입니다. 조선의 3대 문장가 중 한 사람인 주직원도 허균의 특별한 능력을 굉장히 칭송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시문외교는 다른 말로 수창외교라고도 불립니다. 명나라 사신이 우리 땅을 밟으면 조선의 관료들이 나서서 그들을 대접해야 하는데, 직접적인 소통이 불가능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를 지으며 그 말이 통하고 마음이 통했습니다. 시를 통해서 명나라 사신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죠.
세종 때부터 시작된 이 시문외교는 임진왜란이 있던 시기를 포함해 200년간 이어졌습니다. 세종 때 명나라에서 한림원 출신의 뛰어난 문장가를 사신으로 보냈을 때, 정인지, 성삼문, 신숙주가 총 15편의 시를 주고받으며 명나라 사신으로부터 "그대와 나눈 대화는 10년 책을 읽은 것보다 낫다"는 극찬을 받았던 일화는 시문외교의 중요성을 잘 보여줍니다. 허균은 바로 이 전통의 정점에 서 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조선시선과 한글의 해외 전파


허균의 업적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조선시선이라는 책의 출판입니다. 임진왜란 말렵에 조선에 왔던 명나라 사신 오명제는 허균으로부터 많은 시를 듣게 되었고, 그 시를 수백 편 모아서 조선시선이라는 신문집을 펴냈습니다. 이는 명나라에서 출판된 조선의 신문집으로, 명나라의 경전이나 명나라의 시가 조선에 소개되는 경우는 많았지만 조선의 시가 명나라에 소개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조선시선에는 신라시대의 최치원에서부터 모두 108명의 시 340여 편이 실려 있습니다. 책 제일 첫머리에 오명제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허균이 영민하여 한번 보면 잊지 않아 동방의 시를 수백 편이나 외워주었다." 허균 덕분에 출간될 수 있었던 책이라는 것을 명확히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책에 적혀 있는 수백 편의 시에는 한자로 쓰여진 동시에 그 음이 한글로 쓰여 있다는 점입니다. 당시는 한글 사용이 많지 않은 시기였는데, 허균은 여기에 한글로 음을 달아서 우리나라 한글을 명나라에 소개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시를 소개하는 것을 넘어 한글이라는 문자 체계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문화 외교의 성과였습니다.
명나라 역시 조선과의 시문외교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조선은 비록 외국이지만 독서하는 사람이 많고 예의를 한다. 학문하는 사람을 사신으로 보내야 중국 체통을 떨어뜨리지 않고 인심을 잃지 않는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명나라도 조선과의 신문외교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명나라와의 시문외교에서, 그리고 임진왜란 때 무엇보다 중요했던 명나라의 외교관계에서 허균이 얼마나 특별한 역할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허균 하면 홍길동전만 떠올리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이제야 깨닫게 됩니다. 조선시대 5대 문장가 집안 출신이었다는 사실, 허난설헌과 친남매였다는 점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임진왜란이라는 국난 속에서 시인, 문장가, 외교가로서 국가를 위해 헌신했던 허균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입니다. 소설가가 아닌 진정한 천재 문장가이자 외교가로서의 허균을 기억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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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PUc2I06Rd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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