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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륜의 킹메이커 행보 (풍수지리, 왕자의난, 태종신뢰)

by gohappyjan 2026. 1. 26.

조선시대 하륜
조선시대 하륜

조선 초기 권력 구도의 중심에는 정도전만이 아니라 하륜이라는 또 다른 전략가가 있었습니다. 정도전이 새 왕조의 설계자였다면, 하륜은 그 설계도 위에서 실제 권력의 주인을 바꾼 인물입니다. 신진 사대부 출신이면서도 풍수지리와 관상에 능했던 하륜은 자신이 모실 리더를 스스로 찾아 나섰고, 결국 이방원을 태종으로 만들어낸 킹메이커가 되었습니다. 그의 선택은 현실 정치의 냉혹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시대가 요구한 실용주의의 전형이기도 합니다.


풍수지리와 관상으로 읽어낸 권력의 미래


하륜은 학식이 뛰어난 신진 사대부였지만, 특히 풍수지리와 관상에 관한 안목이 탁월했습니다. 그는 경복궁의 위치를 놓고 정도전과 의견이 충돌했고, 당시 권세를 쥔 정도전의 견제를 받아 한직으로 밀려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그러나 하륜은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기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모실 만한 리더를 찾아 나섰고, 권문세가였던 민제와의 인연을 통해 그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하륜은 민제에게 "내가 관상을 많이 보지만 공의 둘째 사위 같은 사람은 내가 여태껏 보지 못했다"며 만남을 청했습니다. 그 둘째 사위가 바로 이방원이었습니다. 하륜은 이방원의 관상을 보고 왕이 될 만한 인물임을 간파했고, 이방원 역시 정도전에 대한 반감을 품고 있었기에 두 사람의 이해관계는 완벽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하륜이 권력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전략적으로 접근한 결과였습니다.
이러한 행보는 현실 정치가로서의 하륜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그는 명분보다 실리를, 이상보다 생존을 우선시했습니다. 풍수지리와 관상이라는 당대의 학문적 도구를 활용해 미래를 예측하고, 그에 맞는 선택을 과감히 실행에 옮긴 것입니다. 이는 기회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혼란한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한 현실적 지혜였다고도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하륜의 선택은 개인의 영달을 넘어, 새로운 왕조의 권력 구조를 재편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왕자의 난을 설계한 전략가의 치밀함


정도전을 제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권력을 정도전이 쥐고 있었고, 하륜은 그의 견제로 인해 관찰사로 밀려나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륜은 자신이 모시는 이방원의 곁을 떠나기 전, 철저한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는 이방원에게 "제가 떠나면 반드시 정도전이 선수를 칠 겁니다. 대군께서는 이숙번에게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제가 글을 통해서 훈련된 군사들을 다 준비해 놨습니다"라고 말하며,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에서 결행을 촉구했습니다.
이러한 치밀함은 왕자의 난이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이었습니다. 하륜은 단순히 조언자에 그치지 않고, 실제 군사력까지 조직하고 배치해 둔 전략가였습니다. 그의 예측대로 정도전은 세자 이방석을 중심으로 권력을 공고히 하려 했고, 이방원은 하륜이 마련해 둔 군사력을 바탕으로 정도전과 이방석을 제거하며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하륜은 물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의 설계는 완벽하게 작동했습니다.
왕자의 난 이후 이방원은 형제를 죽이고 권력을 잡았기에, 아버지 이성계로부터 인정받기 어려웠습니다. 이성계는 왕위를 둘째 아들에게 넘기고 함흥으로 떠났고, 이방원은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 아버지를 모셔오려 했습니다. 결국 이성계가 돌아왔을 때, 하륜은 또다시 그의 통찰력을 발휘했습니다. "상황의 노여움이 아직 다 풀어지지 않았을 것이니 모든 일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늘막을 칠 때 받치는 기둥을 의당 큰 나무로 쓰겠습니다"라며 만일의 사태를 대비했습니다.
실제로 이성계는 이방원에게 화살을 겨눴고, 태종은 하륜이 준비한 큰 기둥 뒤에 숨어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술잔을 올릴 때도 하륜은 "술잔을 직접 드리지 마시고 내실을 통해서 드리세요"라고 조언했고, 이성계는 옷자락 안에서 철퇴를 꺼내며 허허 웃었습니다. 하륜의 예측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아떨어졌고, 태종의 목숨을 두 번이나 구해냈습니다. 이러한 일화는 하륜이 단순한 모사가 아니라, 인간 심리와 상황을 꿰뚫어 보는 뛰어난 전략가였음을 증명합니다.


태종 신뢰를 얻은 충직한 신하의 품격


하륜은 태종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는 신하였습니다. 태종이 양위를 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많은 신하들이 반대했지만 최측근이었던 이숙번은 "사람의 나이가 50이 되어야 혈기가 쇠하니 나이 50이 되기를 기다려도 늦지 않으실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50이 되면 양위하라는 뜻이었고, 태종은 마음이 상했습니다. 반면 하륜은 즉각 "주상의 춘추가 60이고 70이 되고, 세자의 나이가 서른이고 40이 됐어도 불과할 텐데 하물며 지금 주상의 춘추가 한창일 때인데 절대 불가합니다"라고 말하며 태종의 마음을 풀어주었습니다.
태종은 하륜을 극도로 신뢰했습니다. 하륜은 입이 무거운 사람으로 유명했고, "저 사람의 귀에 들어간 것은 쉬 입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실록에는 태종이 상왕이 되었을 때 하륜에 대해 "하정승 사람됨이 남의 잘하는 것을 되도록 도와주고 남의 잘못하는 것은 되지 아니하도록 말려주고 그 충직하기가 견줄 사람이 없었다"라고 칭찬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실록은 하륜을 "천성적인 자질이 중후하고 온화하며, 책을 정하면 그 마음을 쉽게 바꾸지 않는 사람"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하륜은 인재를 거두지 못할까 늘 두려워했고, 많은 인재를 추천하려 고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집에 머물 때는 사치하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독서를 좋아해서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앞두고는 "내가 죽으면 국장을 없애도록 청하고 집안 식구들끼리 조용히 장사를 지내도록 해서 백성들을 번거롭게 하지 말아라"라고 당부했습니다. 왕을 세우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이 마지막까지 백성을 걱정한 것입니다.
하륜은 70세의 나이에도 태종의 곁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은퇴를 원했지만 태종이 놔주지 않았고, "선대 왕들의 무덤을 돌면서 바람을 좀 쐬고 돌아오시오"라며 보낸 길에서 함경도 정평에서 턱 밑 종기가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태종은 그 소식을 듣고 심히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고, 3일 동안 조회를 폐하고 7일 동안 고기를 먹지 않으며 깊이 상심했습니다. "조정의 대사를 염려하며 얼굴색이 변하지 않고 나라를 반석에 올려놓을 임무를 어디서 바라겠는가"라고 한탄한 태종의 모습에서, 하륜이 단순한 신하가 아니라 태종에게 없어서는 안 될 동반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륜의 생애는 현실 정치의 냉혹함과 신하로서의 충직함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기회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동시에 혼란한 시대에 국가 체제를 안정시키는 데 기여한 현실 정치가였습니다. 하륜은 과연 나라를 위한 충신이었는가, 아니면 권력에 적응한 관료였는가. 그 답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의 선택이 조선 초기 왕권 강화와 국가 안정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는 점입니다. 혼란의 시대에 '현실적 선택'이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화두로 남아 있습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ShSKT_ttF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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