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30 김준엽 이야기 (광복군, 학원자유, 행동하는지식인) 솔직히 저는 김준엽이라는 이름을 꽤 오래 몰랐습니다. 안창호, 김구, 윤봉길은 교과서에서 배웠지만, 김준엽은 어느 날 우연히 접한 역사 강연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 석 자가 마음에서 쉽게 떠나질 않았습니다. 단순히 용감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가 평생 지키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수록 묵직하게 가슴을 눌렀기 때문입니다.일본군을 탈출해 광복군이 된 청년1923년에 태어난 김준엽은 일본 유학 중 학도병으로 징집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여기서 학도병이란 태평양 전쟁 말기 일제가 식민지 조선의 대학생들을 강제로 전쟁에 동원한 제도를 말합니다. 전선에 끌려가기 전에 탈출을 결심한 그는 준비가 남달랐습니다. 중국 지도를 접어 부적 주머니 안에 숨기고, 나침반과 중국어 회화책을 챙겼으며, 만일 일본.. 2026. 4. 3. 장준하 이야기 (광복군, 사상계, 재야의 대통령) 재야의 대통령이라 불린 사람, 그는 정말 권력 밖에서도 정치를 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장준하라는 인물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의문이 들었습니다. 제도권 권력도 없이 어떻게 한 시대를 움직였을까 하는 의문이었죠. 일제강점기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해 광복군에 합류했고, 해방 후에는 『사상계』를 통해 지식인 담론을 이끌며 독재에 맞섰던 그의 삶은 도덕적 권위만으로도 시대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상과 제도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지 우리에게 묻고 있기도 합니다.광복군이 되기 위한 6000리 대장정, 그 선택의 무게장준하는 왜 목숨을 걸고 일본군을 탈출했을까요? 1944년 일본의 징집령이 떨어졌을 때, 조선인 유학생들의 선택은 제각각이었습니다. 문익환 목사는 만주로 돌아갔고.. 2026. 4. 2. 원효의 삶과 깨달음 (일심사상, 무애행, 화쟁철학) 해골물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저는 단순한 설화로만 여겼습니다. 그런데 원효라는 인물의 삶 전체를 들여다보니, 이 일화 하나가 얼마나 깊은 철학적 전환점이었는지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원효는 신라 화랑 출신으로 전쟁터에서 명성을 떨치다가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출가했고, 귀족 중심의 불교를 민중 속으로 끌어내린 실천적 사상가였습니다. 그가 남긴 세 가지 깨달음—일심, 무애, 화쟁—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집니다.마음이 만드는 세계, 일심사상의 핵심원효가 당나라 유학길에 오르다 무덤에서 하룻밤을 보낸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첫날밤 동굴인 줄 알고 편히 잤지만, 다음 날 그곳이 무덤임을 알고 나니 귀신이 보이고 잠을 이룰 수 없었다는 일화입니다. 여기서 원효가 깨달은 것은 .. 2026. 4. 1. 창덕궁 후원 (인정전 청기와, 존덕정 정조, 낙선재) 솔직히 저는 창덕궁을 처음 방문했을 때, 경복궁과 뭐가 다를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공간이더군요. 창덕궁은 법궁인 경복궁의 이궁으로, 왕이 위급 상황에서 피신하기 위해 만든 궁궐입니다. 하지만 조선 왕들이 실제로 가장 오래 머문 곳은 경복궁이 아닌 창덕궁이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태종 이방원이 왕자의 난이 벌어진 경복궁을 떠나 1405년에 창덕궁을 지은 이후, 이곳은 270년 넘게 정치의 중심지였습니다. 자연 지형을 거스르지 않고 건물을 배치한 덕분에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죠.인정전 청기와, 왕권을 드러낸 푸른 지붕창덕궁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건물은 정전인 인정전입니다. 여기서 정전(正殿)이란 왕이 신하들과 공식 행사를 치르는 가장 중요한.. 2026. 3. 31. 경복궁 여행 (근정전, 경회루, 건청궁) 서울에 처음 올라갔을 때 저는 경복궁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광화문에서 바라본 북악산의 능선이 궁궐 지붕선과 겹치는 풍경은, 부산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평일 오전임에도 한복을 빨리 입은 관광객들이 근정전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저 역시 그 속에서 조선시대 왕들이 바라봤을 시선을 따라가며 궁궐을 거닐었습니다. 경복궁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조선 500년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었습니다.법궁의 배치, 왕권을 상징하는 공간 구조경복궁은 1395년 조선 건국 직후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수도로 정하면서 가장 먼저 세운 궁궐입니다. 당시 정도전과 무학대사는 궁궐 방향을 두고 의견이 엇갈렸는데, 정도전은 북악산을 주산(主山)으로 삼아 남쪽을 향하도록 설계했습니다. 여기서 주산이.. 2026. 3. 30. 고당 조만식 평가 (신탁통치, 물산장려운동, 민족지도자) 조만식 선생을 '조선의 간디'라고 부르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처음 이 별명을 들었을 때 단순히 비폭력 운동을 했다는 정도로만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을 들여다보니,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 힘으로 경제 기반을 세우려 했던 실천적 애국자였습니다. 해방 후 신탁통치 반대로 북한에서 최후를 맞은 그의 선택은, 원칙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은 진정한 민족 지도자의 모습이었습니다.물산장려운동, 경제 자립의 꿈인가 한계인가일반적으로 조만식 하면 물산장려운동을 떠올립니다. '내 것을 쓰자'는 구호는 분명 민족 자존심을 일깨우는 운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자료를 찾아보니, 실제로는 복잡한 문제가 있었습니다.1920년대 평양에서 시작된 물산장려운동은 국산품 애용을 통해 민족 경제를 살리자는 .. 2026. 3. 27. 이전 1 2 3 4 ··· 2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