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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사4

김준엽 이야기 (광복군, 학원자유, 행동하는지식인) 솔직히 저는 김준엽이라는 이름을 꽤 오래 몰랐습니다. 안창호, 김구, 윤봉길은 교과서에서 배웠지만, 김준엽은 어느 날 우연히 접한 역사 강연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 석 자가 마음에서 쉽게 떠나질 않았습니다. 단순히 용감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가 평생 지키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수록 묵직하게 가슴을 눌렀기 때문입니다.일본군을 탈출해 광복군이 된 청년1923년에 태어난 김준엽은 일본 유학 중 학도병으로 징집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여기서 학도병이란 태평양 전쟁 말기 일제가 식민지 조선의 대학생들을 강제로 전쟁에 동원한 제도를 말합니다. 전선에 끌려가기 전에 탈출을 결심한 그는 준비가 남달랐습니다. 중국 지도를 접어 부적 주머니 안에 숨기고, 나침반과 중국어 회화책을 챙겼으며, 만일 일본.. 2026. 4. 3.
장준하 이야기 (광복군, 사상계, 재야의 대통령) 재야의 대통령이라 불린 사람, 그는 정말 권력 밖에서도 정치를 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장준하라는 인물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의문이 들었습니다. 제도권 권력도 없이 어떻게 한 시대를 움직였을까 하는 의문이었죠. 일제강점기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해 광복군에 합류했고, 해방 후에는 『사상계』를 통해 지식인 담론을 이끌며 독재에 맞섰던 그의 삶은 도덕적 권위만으로도 시대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상과 제도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지 우리에게 묻고 있기도 합니다.광복군이 되기 위한 6000리 대장정, 그 선택의 무게장준하는 왜 목숨을 걸고 일본군을 탈출했을까요? 1944년 일본의 징집령이 떨어졌을 때, 조선인 유학생들의 선택은 제각각이었습니다. 문익환 목사는 만주로 돌아갔고.. 2026. 4. 2.
6월항쟁 (박종철, 진실,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한 번의 승리로 완성되는 걸까요, 아니면 끊임없는 감시와 실천으로 유지되는 걸까요? 1987년 6월 항쟁은 한국 민주주의의 분수령으로 평가받지만, 저는 이 사건을 볼 때마다 복잡한 감정이 듭니다. 고문으로 숨진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 시민의 분노를 일깨웠고, 거리의 외침은 직선제 개헌이라는 제도 변화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권력기관의 문화는 정말 달라졌을까요? 개인의 희생이 집단의 각성으로 확장된 과정은 인간 존엄과 진실의 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깊은 공감을 주지만, 동시에 우리가 놓친 것은 없는지 돌아보게 됩니다.은폐와 폭로, 진실을 향한 기록들1987년 1월 14일,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 박종철 학생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하루 만에 고문으로 사망했습니다. 치안본부는 "탁 치니 억 .. 2026. 3. 20.
4·19 혁명 (김주열, 진명숙, 시민 저항) 솔직히 저는 4·19 혁명을 교과서에서 배울 때만 해도 '대학생들이 주도한 혁명'이라고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초등학생까지 거리에 나섰고, 그중 상당수가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1960년 4월, 186명이 희생된 이 혁명에서 무려 77명이 학생이었고, 그중 19명은 초·중학생이었습니다. 부정선거에 맞선 시민 저항의 역사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어리고 약한 이들의 피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김주열의 죽음과 그 이후의 침묵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된 것은 1960년 4월 11일이었습니다. 얼굴에 최루탄이 박힌 채 떠오른 그의 모습은 전국을 분노로 물들였고, 이후 4·19 혁명의 직접적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기폭제'란 잠재되어 있던 .. 2026.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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